
국민의힘이 23일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주도한 이른바 ‘혁신안’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소집했지만, 윤 위원장의 불참으로 본격적인 토론조차 진행하지 못한 채 1시간 만에 종료됐다.
이 과정에서 당내 소통 부재와 노선 충돌, 혁신위에 대한 불신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계파 간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의총에서 논의될 예정이던 혁신안은 ▲계엄·탄핵 관련 당헌상 대국민 사과 조항 신설 ▲최고위원 선출 방식 변경 ▲당원소환제 강화 등 3대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 위원장이 불참하면서 다수 의원들이 “당사자 설명 없이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주장, 결국 의총은 실질적인 논의 없이 끝났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의총 직후 브리핑에서 “참석자들 상당수가 ‘왜 이런 안이 나왔는지, 당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며 “윤 위원장을 초청해 다시 의총을 여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 지도부 “사전 교감 없었다”…혁신위 “이게 개혁의 본질”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 이후 당 쇄신을 위해 윤희숙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혁신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지도부와 혁신위 사이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는 “혁신위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당헌 개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사전 교감 없이 발표한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계엄이나 탄핵 문제를 당헌에 사과 조항으로 넣자는 건 당의 중립성과 균형성을 해치는 자충수”라며 “지금은 분열보다 수습, 국민 신뢰 회복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윤 위원장 측은 “혁신의 본질은 고통스러운 결단에서 시작된다”는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윤 위원장은 혁신안 발표 직후 “우리 당은 과거사에 정면으로 책임지지 못했다”며, 탄핵·계엄에 대한 명확한 태도 정립이 보수 재건의 출발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중도 재선은 “방향성 공감”…친윤·강경파는 “시기·내용 모두 부적절”
이번 사안을 둘러싼 반응은 국민의힘 내부 계파 간 노선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전당대회 이후 입지를 넓히고 있는 중도·개혁 성향 재선 의원들은 “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논의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탄핵과 계엄 같은 민감한 사안을 회피만 해선 안 된다”며 “혁신위 안의 방향성 자체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전통적 보수 강경파와 친윤계 인사들은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할 시점에, 당 내부를 자극하는 혁신안이 왜 나왔느냐”는 비판이 나왔고,
특히 당원소환제 강화에 대해서는 “의원 개개인을 사퇴 압박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제도”라는 우려가 컸다.
한 친윤계 의원은 “소환제가 강화되면 당 지도부나 의원들이 포퓰리즘 압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책임정치가 아니라 군중정치가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 ‘쇄신이 곧 리스크’로…윤 위원장 거취가 향후 변수
정치권에선 이날 의총 무산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야당 내 신뢰 위기와 쇄신 리더십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평론가 장모 씨는 “혁신의 절박함은 인정되지만, 정치적 타이밍과 내부 공감 없이 밀어붙일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며 “이번 혁신안이 분열의 불씨가 될지, 실질적 변화의 계기가 될지는 향후 당내 논의 구조가 어떻게 정비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윤 위원장이 당내 논의가 미진한 상태에서 ‘정치적 메시지’부터 던지려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도부는 조만간 윤 위원장을 직접 초청해 다시 의총을 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갈등이 재점화될 경우, ‘쇄신을 위한 쇄신’이 오히려 당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